가정_[우리 부부이야기](25) 오늘은 아내로부터 '해방'된 날
[우리 부부이야기](25) 오늘은 아내로부터 '해방'된 날
왜 지금껏 나는 아내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을까?
언제부턴가 아침마다 식사 후 비타민을 한 알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비타민이 다 떨어졌길래 아내가 볼 수 있도록 빈병을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아내는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새로 사다 놓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집 부인들은 남편 건강 챙긴다고 봄, 가을로 보약을 해다가 챙겨 먹이려 해도
남편들이 무슨 유세라도 떠는 듯 안 먹어서 속을 태운다는데,
우리 마누라는 도무지 남편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투덜댔습니다.
그러던 제게 팔꿈치 통증까지 왔습니다.
며칠간 파스를 붙이고 얼음찜질도 해봤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프다고 해도 아내는 "큰일이네. 어떻게 하나? 병원에 가보시던지…"하는 말 한마디로
끝이었습니다.
통증을 더는 견딜 수 없어 혼자 병원진료를 받은 후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어섰습니다. 진열장에 걸린 "허약해진 몸에 아주 효과가 있습니다"하는 문구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약국을 나오면서 '그래, 그냥 내가 바로 사다 먹으면 되는데 뭐하러 혼자 속을 끓이나?'하며 웃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출근할 때나 퇴근 후에나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모든 것은 아내가 준비해줬습니다. 그런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지만 뭔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고 화를 냈습니다.
'왜 나는 아내의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을까?
이렇게 필요한 것은 내가 마련해도 되는 것을 왜 평생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오늘은 마누라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온 내 자신이
아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날'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아내에게 당당하게 약병을 꺼내 보이며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서 '해방된 날'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비타민 병을 들고 쓰윽 한번 훑어보고는 "그래요.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하며
마음을 열어보였습니다. 아내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영양제 같은 것에 워낙 신뢰가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먹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챙겨줬던 거죠.
받는 사랑에만 익숙하던 당신이 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로워졌다니
정말 기뻐요. 사람이란 본래 태생을 속이며 살 수 없어요.
워낙 무뚝뚝한 DNA를 가진 내가 나긋나긋하게 애교 부리는 아내로 변해
당신 마음에 들어보려고 죽어라 노력도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02%의 노력이 당신에겐 2%밖에 비치지 않던걸요.
나는 애교 만점의 알뜰살뜰한 마누라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이제 당신이 마음을 바꾼다니 하늘을 날듯 기뻐요.
나 같은 여자와 살면서 어떻게 해야 덜 힘들고, 덜 아픈지 고민해봐요.
그렇게 사는 게 오히려 당신이 덜 힘들고 더 쉽게 살아가는 지름길이에요.
오늘 혼자 비타민을 사온 것처럼 이제 나에게서 뭘 바라기보다
마누라가 뭘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주세요.
내가 평생 당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살아온 것처럼…."
실컷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제 입가엔 미소가 그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