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_[우리 부부이야기](14) 아내의 손 잡아줄 사람은…
[우리 부부이야기](14) 아내의 손 잡아줄 사람은…
아내가 수술을 앞두고 온종일 각종 검사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전날부터 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앞두면 남편의 머리는 고속회전 상태로 바뀝니다.
집에서 병원예약 시간을 점검하고 늦지 않게 출발했습니다.
가는도중에 아내는 전화 한통을 받았는데 속된 말로 '완전히 열받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침묵했습니다. 아내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주기 위해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신경을 건드리면 안 된다 싶었습니다.
병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싶어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이미 아내는 전화를 건 사람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출발은 다행히 순조로웠지만 병원에 도착하자 화를 돋우는 일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최고 시설을 자랑한다는 병원의 업무처리는
환자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각 부서의 효율성만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부서의 직원은 예약을 받으면서 실수를 해 검사가 지체됐고,
그로 말미암아 다음 검사를 받아야 할 부서에서 예약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오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전화를 해왔습니다.
처음 검사부서와 다음 검사부서까지 거리는 200m가 더 되는데
두 번째 검사 예약시간 5분 전에야 첫 검사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검사를 마친 후 다시 첫 번째 부서로 되돌아가 못다 한 검사를 마친 후에
세 번째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아내의 걸음걸이는 언제나처럼 양반이었습니다.
시간이 늦으면 안 돼 열심히 걸어야 하는데
아내의 보폭은 힘차게 걷는 제 보폭을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걷다 보니 아내는 10m나 뒤에서 나름 열심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선 '뛰란 말이야'하고 소리쳤지만 실제로는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나란히 서게 되자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 큰 병원에, 이 넓은 세상에 아내의 손을 잡고 열심히 함께 걸어줄 사람은
오직 남편 한 사람밖에 없구나 싶었습니다.
화가 난 상태로 열심히 걸어가던 머릿속이 갑자기 평화로워졌습니다.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지'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여유롭게 아내에게 장난을 걸었습니다.
"당신 신랑 하나 잘 만난 줄 알아. 이렇게 손잡아 줄 사람 또 어디 있겠어?"
아내는 환자로서는 웃기 힘든 환한 눈길로 남편을 올려다봤습니다.
검사는 계속됐고 붐비던 병원은 한산해졌습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니
저녁 9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창 밖엔 어둠이 내렸고 텅 빈 병원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100m도 더 되는 긴 로비를 걸었습니다.
연애 시절 쿵쾅거리는 설렘으로 조심스레 처음 잡아보았던 그 작은 손 그대로였습니다. 처음 아내의 손을 잡았을 때 이 여자를 언제까지나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마음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잃어버리고 살아왔구나 싶었습니다.
아내의 작은 손을 잡으며 잃어버렸던 예쁜 마음을 되찾은 듯 무척 기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