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공간) 감실, 고해소, 성가대석, 성상
전례공간 : 감실, 고해소, 성가대석, 성상
- 축성된 성체 보존은 임종에 처한 신자의 노자성체를 위한 준비로 생겨나
봉사자석
봉사자들을 위한 좌석은 주례석이나 성직자석과는 분명히 구분되면서
그들이 맡은 임무를 편리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한다.
따라서 복사들을 위한 자리는 주례사제 곁이나 쉽게 도울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하고
성서 봉독자들을 위한 자리는 독서대가 있는 쪽에 마련한다.
감실
감실은 병자나 다른 이를 위하여 성체를 늘 모셔두어 개인의 조배나 기도를 돕도록 한다.
미사 중에 축성된 성체를 보존하는 관습은 임종의 위험에 처한 신자가
하느님 곁으로 가는 도중의 양식 즉 노자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로서 생겨났다.
초기에는 보통 주일에만 미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보존되는 축성된 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자체이므로
자연히 그 앞에서 기도를 바치게 되고
미사를 지내지 않는 평일에도 성체를 그날의 양식으로 영하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성체를 보존하는 그릇과 장소는 여러 가지 변화의 과정을 거쳐
경당의 제단 중앙에 놓인 감실에 안치하게 되었다.
고대의 감실은 성당의 안쪽이나 제의실 벽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비둘기 형태를 한 그릇에 넣어 제대 위 천장에 매달거나 성당 내부에 조그마한 탑을 만들어
그 안에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성체 앞에서 기도하거나 묵상하는 관습과 함께 소성당이 생기게 되었다.
후대에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강조됨에 따라
성체께 대한 흠숭과 경배가 전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감실은 점차 성당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소성당에서는 미사를 지내는 제대 위에 안치하는 곳이 늘어났다.
그 영향으로 감실은 미사를 지내는 중앙 제대에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법규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빵의 형태로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는 결과로
생긴 것이고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직접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전례의 현장에서 감실이 처음부터 제단에 놓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감실을 중앙 제대 뒤편에 안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전례의 장만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감실을 꼭 고려할 필요가 없으나
성체께 대한 개인적 경배나 묵상의 장을 갖기 위해서는 별도의 경당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감실을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별도의 경당을 설치할 공간이 없는 경우는
성당 중앙 제대 뒤편에 감실을 안치하는 재래의 관습을 피하고,
제단 안에 가장 적절한 장소에 둔다.
고해소
고해소는 가능한 성당 밖에 설치하여 성당 내에서 두 가지 성사가 동시에 집전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특히 주일의 경우 한 성당 안에서 사목적인 이유 때문에 미사와 고해성사를 동시에 거행하는
본당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성당 안에서 두 가지 전례가 동시에 집전되어
집회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분심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 성당 벽쪽에 이미 큰 십자가 있으면 제대에 별도로 또 놓을 필요는 없어...
성가대석
성가대는 공동체의 일원이며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장소에 마련해야 한다.
또 전례 봉사를 쉽게 하고 모든 성가대원이 편리하게 성체를 영하며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특히 회중이 그 노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위치라야 하므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회중을 향해 있고 가능하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지휘자는 성가대원과 회중 모두에게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성당 이층에 마련하는 것보다 회중의 성가에 잘 봉사할 수 있는
제대 가까이에 그 위치를 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지휘자는 성가대원 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를 이끌어
한 목소리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
제대 위에나 그 주위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모습이 있는 십자가를
모인 백성이 잘 바라볼 수 있도록 놓아둔다.
벽쪽에 이미 큰 십자가가 있으면 제대에 별도의 십자가를 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십자가는 전례를 거행하지 않을 때도 제대 가까이에 두도록 한다.
성수대
성수를 찍는 것은 성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례를 기억하며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
생각과 원의, 탐욕과 근심, 미움, 호기심 등을 모두 떨쳐 버리고
깨끗하게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수대를 성당 안 쪽에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례대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한 세례성사를 기념하는 표징인
세례대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는 처음부터 별도의 세례당을 준비하였다.
원형이나 팔각형의 형태로 몇 계단 지면보다 낮게 만들어 이곳에서 세례를 집전함으로써
세례가 가지는 의미를 더 한층 풍부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팔각의 형태는 여드레 날에 부활하신 주님을 의미하고,
몇 계단 지면보다 낮게 만든 이유는
계단을 내려가며 악마, 권세, 영화를 포기하고,
올라가면서는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는 세례의 의미를 드러내 주기 위함이었다.
세례대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의미를 띠므로
물에 잠기는 것(죽음)과 물에서 나오는(부활)
두 움직임이 잘 드러나는 침수를 위한 세례대로 만들어지면
세례가 담고 있는 의미를 더 한층 드러내 줄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의 부족이나 사목적인 어려움 때문에 침수는 못한다 하더라도
세례대를 설치하여 그 곳에서 세례자의 머리 부분만이라도 물로 씻었으면 한다.
세례대의 위치에 있어
초기에는 세례대가 미사 봉헌을 위한 성당의 불가결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당 자체와는 따로 마련하였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 공동체가 참석하는 축제의 의미,
세례와 성체 성사의 필연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성당 안에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하느님 말씀과 입문 예식의 절정인 성체성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명백히 드러낼 수 있도록 제대와 독서대를 고려하여 세례대를 배치하는 것이 좋다.
성화상
매우 오래된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당 안에 신자들의 공경을 위해 주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및
성인들의 성화상을 모셔 두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성화상들은
성당 안에서 거행되는 신앙의 신비로 신자들을 이끌어 주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화상의 수가 무분별하게 많지 않아야 하고,
성화상들을 질서 있게 배치하여
미사나 전례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 분심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성인들의 성화상을 제단 위에 모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같은 성인의 성화상을 하나 이상 모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