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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_'수원ㄱ구 설정 50주년; 및 ;신앙의 해; 영적쇄신을 위한 영성운동_희년의 의미

moses-lee 2012. 10. 29. 08:13

희년의 의미
희년은 ‘주님의 은총의 해’이며, “죄와 그에 따르는 벌을 사해주는 용서의 해, 대립된 집단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해, 다양한 회개와 성사적, 성사 외적 참회의 해입니다”(『제삼천년기』14항).
교회의 희년은 무엇보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해이며,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만나는 해이다. 또한 이 은총의 시기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그분을 통해 당신 자녀로 받아 주시기까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요한 3,16 참조)을 깨닫도록 교회 교도권이 마련한 ‘거룩한 해’이다.

1. 희년의 참된 뜻
어원적으로 희년은 ‘요벨’(y?bel)이라는 희브리어에서 유래한다. 요벨은 숫염소의 뿔을 의미하는데, 이 뿔로 50년마다 열리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제전을 알렸다. 오십 년째가 되는 해는 ‘거룩한 해로 선언’되어, 그 해에는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했다(레위 25장 참조).
1) 희년의 정신
세월이 흐르면서 정신적인 차원으로 전승된 구약의 희년은, 메시아이신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었고 이후에는 교회 안에서 계승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희년은 단순히 기념적 차원에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나눔으로 더욱 높고 완전하게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거룩한 교회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희년에 대한 옛 관습을 ‘물려받고’, 근본정신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 새로운 복음화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고대의 희년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실현하실 진정한 해방”(제삼천년기 13항)을 ‘예표하는’ 교회의 활동 안에서 세상에 충만한 기쁨으로 되살아난다.
2) 거룩한 해
수원교구가 설정 50주년을 기념해 특별 희년을 지냄에 있어 이러한 희년의 본질이 흐려지거나 부차적인 선상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기념행사는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구원활동 안에 스며들어 있는”(제삼천년기 16항) 축제이기보다는 ‘외적’과시와 단순한 종교행사로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희년의 참된 뜻은 시간과 자연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인간이 여기에 순응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수원 교구민 모두는 하느님께서 자연 질서와 인간 역사를 당신 섭리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으며,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희망 중에 삶 속의 ‘신앙여정’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2. 희년의 기원과 의미
희년의 기원은 구약 시대의 희년(禧年), 곧 ‘사면 또는 해방의 해’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는 안식년 및 희년에 관한 규정이 상세히 언급된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면서 안식년과 희년을 지켜야 한다’고 언급한다.
1) 구약성경에서
매 일곱째 해는 안식년이며,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해 곧 50년 되는 해가 ‘희년'이다. 안식년의 의미는 본래 땅에서 수확하는 일을 멈추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땅을 쉬게 하는 목적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와 가축을 돕고자 함이다.
①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
희년의 의미 또한 안식년의 연장선에서 찾아야 한다. 나아가 희년은 주님께서 본래 ‘땅의 소유자’라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요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3). 따라서 인간은 소작인의 위치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집트 탈출에서 얻은 해방과 가나안 정복으로 얻은 재산의 궁극적 소유권이 하느님에게 있음을 이스라엘 백성이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희년의 근본 사상이다.
② 해방의 축제
한편 희년은 ‘해방의 해’로 간주되었다는 점이 안식년과 구별된다. 희년 선포와 더불어 숫양의 뿔을 불어 해방을 알리는 독특한 예식에서 축제의 의미가 깊게 풍겨 나온다.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노예의 처지에서 풀려나 기다리던 자신의 친족과 토지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그 자체로 이미 ‘기쁨의 대축제’이다.
이러한 희년의 정신은 특히 이사야 예언서에서 잘 드러난다. 58장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형식적인 단식을 꾸짖고,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참다운 회개의 단식이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알리며(1절), “주님의 은총의 해”(2절)를 선포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사야서는 희년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부각시킨다. 자유를 되찾아 주는 해방과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회복이 그것이다. 이사야서 저자는 해방과 회복의 이 두 개념을 다시 행복한 미래에 연결시키며, 이 미래의 전망은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질서 회복을 뜻하는 종말론적 차원으로 확장된다(65,17 참조).
2) 신약성경에서
한편 희년은 ‘해방의 해’로 간주되었다는 점이 안식년과 구별된다. 희년 선포와 더불어 숫양의 뿔을 불어 해방을 알리는 독특한 예식에서 축제의 의미가 깊게 풍겨 나온다.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노예의 처지에서 풀려나 기다리던 자신의 친족과 토지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그 자체로 이미 ‘기쁨의 대축제’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① 주님의 은혜로운 해
루카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복음선포 장면은, 그분이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데 스스로 바치실 공생활 전체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곧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선포하신 희년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과 공동체가 당한 모든 억눌림으로부터의 자유와 묶인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조건 없는 해방이며, 모든 잘못과 죄의 용서가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그처럼 증언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그 증언의 내용이셨다. 이웃을 풀어주고 그 소유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으로 다 내어 주는 것을 당신 삶과 죽음의 의의로 삼으셨던 것이다
② 희년의 실현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약속된 메시아를 통한 ‘주님의 은총의 해’(희년)가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곧,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희년은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모형이나 표상을 마련해 주었고, 희년의 실현은 그분 사명의 내용을 이루었다. 하느님 나라와 희년의 이러한 결합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인간 역사에 개입해 들어오신다는 종말론적인 전망과, 하느님의 은혜로운 개입에 인간이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요구를 제시한다. 사랑의 계명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실천한 초대교회의 모습이 사도행전(4,32-34)에 잘 그려져 있다.
③ 특별한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포한 희년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말씀하신다. 그 의미는 기쁨을 체험하는 구원의 순간이 ‘늘 새로운 오늘’ 실현된다는 뜻이다. 희년은 하느님 말씀이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옴으로써 성취된 “시간의 충만”이며 “인간 구원의 날”이고 “주님의 은총의 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특별한 축제는 “단지, 때마다 돌아오는 주년의 반복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활동이 지닌 특성을 밝혀주는 은혜로운 때이다”(제삼천년기 11항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저 “오늘”에는 예언자들이 예언한 모든 것과 ‘오늘’ 예수님의 신비로운 행위로 백성 가운데 일어난 것(루카 5,26; 19,9 참조), 그리고 교회가 ‘오늘’ 민감하게 체험하는 것이 담겨 있다. 결국 나의 ‘오늘’은 은총의 시간이요 축복의 시간이다.
3. 교회의 희년
교회의 소명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인류의 깊은 일치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를 이루어주는 표지요 도구”(교회헌장 1항)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이기도 하다(사목헌장 1항). 따라서 하느님과 일치 그리고 전인류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교회가 지닌 희년의 본 뜻이라고 할 수 있다.
1) 교회의 희년 역사와 신학적 의미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는 1300년부터 희년 혹은 성년을 기념했다. 교회의 첫 희년을 기념한 보니파시오 8세는 매 세기의 초에 희년을 거행하기 원했다. 그러나 이후 구약의 희년처럼 50년마다 거행하도록 정했고, 나중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의 나이를 기념한 33년마다, 그리고 끝으로 25년마다 희년을 거행하게 했다. 희년 거행의 기간을 25주년으로 단축한 주요한 이유는 더욱 많은 하느님 백성들이 장엄한 희년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희년은 25년마다 정기적으로 기념하며, 교회의 특별한 요청과 필요성이 있을 시에는 ‘특별 희년’을 지내기도 한다.
한편 교회 희년의 신학적인 핵심은 전대사를 부여함으로써 그동안 지은 죄로 인한 잠벌을 사해주고 영적 선물을 충만히 받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대사는 교황이 규정한 대로 대성전을 순례하고 회개하며 기도함으로써 얻게 된다.
2) 희년을 구성하는 요소
8세기부터 시작된 그리스도교 희년은 신?구약성경에 나타난 희년의 실천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기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서『제삼천년기』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 바 있다.
① 용서와 회개
희년은 용서를 강조하고 회개를 촉구한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그분으로부터 ‘거저 받는다’는 것이 신학적 핵심이다. 이같은 용서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또한 회개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으로 인해 이루어진 용서의 결과, 하느님과 형제에게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스스로를 쇄신하며 특별히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② 순례
희년은 순례와 연관된다. 순례는 거룩한 것과의 만남인 동시에, 공간과 사회 그리고 심리적인 현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순례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한다. 하지만 거룩한 곳을 찾아간다는 것만으로 은총을 충만히 받는 것은 아니다. 순례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묵상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③ 대사
실제로 대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어느 신자의 잠벌을 면제받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을 돈독히 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신앙을 실천케 함이다. 이러한 희년의 대사를 잘못 이해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령을 통해 “대사는 참된 회개와 참회와 밀접히 연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희년(특별희년) 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세례를 받은 신자로서 파문을 받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며, 고해성사?영성체?지정된 성지 방문 혹은 명확히 제시된 요구 사상들을 실천해야 한다.
수원교구에서는 2013년 10월 3일(목)에 거행될 ‘신앙대회와 감사미사’를 기해 교구민들에게 전대사가 수여될 예정이다.
[참고문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제삼천년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박요한 영식, 『청동문을 열어라 : 희년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2000년 대희년』, 가톨릭출판사, 1999/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대희년 길잡이1,2,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한국교회사연구소(편), 『한국가톨릭대사전』권7, 한국교회사연구소, 2001, 4535~4542/ 신교선, “성부께서 이루시는 희년의 축제적 의미”, 「사목」240호(1999,1), 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