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의 사제 생활
최윤환 몬시뇰(원로사목자) - ‘신학’ 전공 분야가 바뀌다
사제서품을 위해 초대 교구장님이신 윤공희 주교님께 서품청원을 하면서, 이전에 노기남 대주님과 상의해 허락받았던 나의 신학 전공 분야와 기간에 대해 자세하게 편지를 썼다.
내용인 즉 인스브루크 신학대학에서 교의신학 분야를 전공해 학위까지 하기로 계획하고 사제 서품 후 5년간의 기간을 노 대주교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이었다.
윤 주교님께서는 회답하시면서 교의신학도 중요하지만 ‘실천신학’ 분야를 택했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전하셨다.
그래서 한 동안 신학 연구 분야에 대해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인스브루크에 갔을 때 서울 대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던 노단열 프랑스 교수신부님이 우리를 방문했는데, 당시 인스브루크에는 장익 신학생(전 춘천교구장 주교)이 우리보다 1년 먼저 가 있었고 그 다음 나와 김병학, 김영선 신학생이 있었는데 노 신부님이 우리 중 한명은 그 곳 신학대학에서 학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며 나를 지명하셨다.
그래서 그 청을 받아들여 교의신학 학위를 받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당시 인스브루크 신학대학에서 학위취득 논문을 쓰려면 먼저 신학 전반에 걸쳐 2시간씩 4번의 총 8시간의 구두시험이 필요했다.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교장 신부님께 허락을 받고 밤을 새워가며 이미 한 공부를 복습했다.
그러던 중 몸이 쇠약해져 부제품도 다른 신학생들 보다 나중에 그곳을 방문하신 대구대교구 서정길 대주교님께 따로 받게 됐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를 택하라고 하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윤 주교님의 의향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주교님께 사목신학 분야 중 전례학을 전공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셨다.
그래서 독일 주교회의 관할 전례 연구소가 있는 트리엘(Trier) 신학대학으로 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 됐고, 마침 나의 은인 수녀원인 칼 보로메오 수녀원이 그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1964년 10월 인스브룩을 떠나 독일 트리엘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