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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_[우리 부부이야기](6) 유혹이 되어버린 착한 행실

moses-lee 2013. 1. 31. 13:13

[우리 부부이야기](6) 유혹이 되어버린 착한 행실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지만 힘들고 어려운 가정생활을 호소하는 분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을 직업처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기에 남편으로서 조금 불편할 때가 있지만 존중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반면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제 일도 중요하기에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서로에게 알려주고 의논합니다.

아내가 아픈 허리 때문에 한방치료로 침을 맞으러 가는 날,

아내는 치료를 마친 뒤 저녁에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밤늦게 귀가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전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점심을 챙겨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밤늦게 귀가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혼자서 점심을 차려 먹고 나서 보니 밥솥에 밥이 남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저녁에 딸이 일찍 퇴근하면 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쌀을 씻고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눌렀습니다.

TV에서 살림만 하는 남편의 숫자가 15만 명이 넘었다는 뉴스가 귓가로 들려왔습니다.

살림만 하는 남편도 아니면서 열심히 집안일을 돕는 남편의 착한 행실,

양보가 이해를 받지 못했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유혹으로 밀려 왔습니다.

칭찬을 구걸하고 있는 듯 제가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한 가장으로서 먹고 살 만큼 벌어다 주었고, 알뜰살뜰 잘 챙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처럼 술독에 빠지지도 않았고,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며 TV 리모컨과 하나되지 않는

나는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누를 때의 기쁨은 사라졌지만

식탁 위에 놓여있던 복음 해설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착한 행실만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역할은 아닙니다."

150㎞나 되는 먼 길을 걸어 엘리사벳을 만나러 가신

성모님에 관한 구절을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에게 무엇을 바라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셨을까?

친척에 대한 단순한 착한 행실 뿐이었을까?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매주 침을 맞으러 다녀야 하면서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러 가면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아내와 성모님은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묵묵히 행하는 구체적 사랑의 실천들이 모나고 못된 철없는 남편을

이제 겨우 착한 행실을 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줬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옆에 없는 아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잔소리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없이 나를 사람 만들어 줘서 고맙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밤늦게 귀가한 아내는 "밥솥에 밥이 없을 것을 걱정했다"며

남편의 작은 착한 행실에 백점 만점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