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이야기](13) 생선구이와 스파게티
무슨 일이든 먼저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고 주어지는 대로 잘 받아들이는 아내와 반대로
저는 뭐든 부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해 언제나 꼼꼼히 따져보고
길이 있다 싶어야 마음을 놓습니다.
그런 성격 탓에 아내는 쉽게 잠들고 푹 자고 일어나지만
저는 잠들기도 어렵고 잠들어도 금방 깹니다. 우리 부부는 수면 리듬조차 완전히 다릅니다.
아내가 먼저 잠든 후 저는 잠이 오지 않으면 뒤척이다 못해 거실로 빠져 나오곤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른 새벽에 살그머니 일어나 거실로 나왔고
소파에 앉아 창 너머로 아침이 오는 하늘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밝아졌고 아침이 되자 아내가 잠에서 깨어 거실로 걸어 나왔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저를 발견하고 눈인사를 하더니 기지개를 켜며
크게 입을 벌려 하품을 했습니다.
앉아서 아내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 마누라 하품하는 것도 참 예쁘네!"
아내는 얼굴 가득 환하게 웃었습니다. "예쁘다니까 되게 좋아하네" 또 한마디 했더니
"그럼 좋지! 예쁘다는데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비록 짧은 순간 한두 마디 나눴는데 가슴 가득 따뜻함이 밀려 왔습니다.
사실 전날 우리 부부가 함께 십년 넘게 맡아 온 일을 젊은 부부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혼신을 다해 몸 바쳐 해 온 일을 내려놓고 나니 온통 감사드릴 일 뿐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섰구나 싶었습니다.
늙기 전에, 노년을 시작하기 전에 평생 고생해 온 아내에게 기쁨이 되기 위해
뭔가 구체적으로 노력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주름진 얼굴도 예쁘게 보는 눈으로 변화되었나 봅니다.
아내는 아침식사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까탈스러운 남편은 "당신이 준비해주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고 의지를 담아 답했습니다.
세상에 한마디 말이 이렇게 힘들다니!
사랑을 실어 대답을 해야 할 때는 이렇게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찡했습니다.
평생 얼마나 많은 순간 생각 없이 불쑥 말을 내뱉었고
그랬기에 얼마나 많이 가슴에 못을 박았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일요일이고 아이들이 다 집에 있으니 오늘 저녁은 외식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하루 저녁이라도 식사 준비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먹으러 갈까 아이들과 한참 의논을 하다 결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으로 결정했습니다.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어야 아내가 맛있게 먹었을 테지만
결국 아이들 취향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오늘만큼이라도 아이들에게 엄마의 뜻을 존중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언제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으로 취급했구나 싶었고
아침의 회개가 단 하루도 버텨주지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내일은 눈곱만큼이라도 더 잘 해보리라 결심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