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 막말의 시대, 그 원인과 해법을 찾아서 <상>
막말, 돌직구 아니라'데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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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말', '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신자들은 막말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신앙은 결국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
막말 시대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막말 한 마디에 정국이 바람 잘 날 없고
청소년 대화에 욕은 조사가 된 지 오래다.
인터넷상의 막말 댓글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급기야 피를 부른다.
악의에 찬 막말, 시대 흐름에 따른 문화적 변이 현상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사회 전반에 만연하는 막말 문화를 짚어보고 이에 대한 해법을 살펴보는 기획을
2회에 걸쳐 마련한다.
#배려 부족이 막말 문화를 낳았다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정치권의 '귀태'(鬼胎) 논란, 인터넷 막말 댓글에서 비롯된
살인, 텔레비전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막말과 막장 드라마….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에 만연하는 막말 현상을 공동선 약화와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
대중매체 발달로 인한 상업화 가속화 등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이정희(베드로,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몇몇 정치인들의 막말은
기본적 소양과 선진화된 정치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며
"일탈한 막말로 관심을 받고 돌출된 행동을 영웅시 여기는
미숙한 정치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인터넷상의 막말 폐해를 보면
막말 문화는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영수(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익명이 보장되고 짧고 함축적 의미로 의사를 전달하는 댓글과
80자로 의견을 전달하는 SNS의 확산이 직설적 대화법을 낳았다"며
"이는 자신의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는 은유 화법 및 배려 문화 상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막말과 직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슴없는 표현으로 듣는 이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는 듯한
'돌직구'나 '독설'은 막말일까 아니면 직언일까.
기준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빠진 언어는 직언이라 하더라도 막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막말 앞에서는 기존 사회질서도 소용없다.
상대의 나이를 알 수 없는 인터넷상에서 경로우대 사상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가
손자뻘 되는 청소년들에게 막말 세례를 받은 어르신들의 사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김 가브리엘(64)씨는 "정치 관련 기사에 의견을 밝혔다가 나는 물론 가족까지 욕하는
수십 개의 욕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매도하는 것을 넘어 마녀사냥 하는 세태가 무섭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막말에 대한 물리적 규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발언자의 표현 자유와 듣는 이의 인권 침해 논란 공방은 복잡한 함수다.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표현을 반복회 몇몇 악성 댓글자 등이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지만,
그마저도 "몰랐다,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사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취폭력에 그랬던 것처럼 막말에 대해 사회는 관대하고 그 관대함이 막말 문화를 키운다.
결국 막말 문화를 경계하고 이에 대한 도덕적 규범을 만드는 일은
모두의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정희 교수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물이 높아야 배가 높다는 속담처럼
막말을 경계하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 있을 때 막말 문화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며
"막말 문화 확산은 교회가 추구하는 공동선과 평화의 메시지 퇴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스도 사랑을 저해하는 막말
교회 공동체도 막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리실에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청소년과
회합 기도 후 오가는 성인들의 고성은 감추고 싶은 자화상이다.
4년째 중고등부 교리교사로 활동 중인 이 솔렌지아씨는
"교리 시간에도 아이들이 욕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학생의 경우 서로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어이, 개○○'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며
"학기 초에 서로 욕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 청소년들의 욕은 단순히 악의적 표현으로 봐야 할까.
김 안토니오(중2)군은 "화가 나서 하기보다는 그냥 습관처럼 욕이 나온다"며
"학교에서는 욕을 하면 벌점을 줘서 편한 자리에서 더 많이 한다"고 답했다.
욕을 안 하면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보라매청소년수련관 생명사랑센터 박세라(클라라) 팀장은
"막말 문화가 어른들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겠지만, 이것이 꼭 성인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우려적 시각으로만 보기보다) 욕하는 문화가 고급문화가 아님을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성장기의 일시적 막말과 달리 성인의 막말, 즉 배려와 사랑이 결여된 표현은 큰 문제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웃 사랑이 빠졌음은 물론,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까닭이다.
김길동(알폰소 로드리게스, 서울 신사동본당) 총회장은
"뼈가 있는 말과 감정에 따라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냉담하는 신자도 적지 않다"며
"말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이 많지만,
그냥 덮고 가는 경우가 많고 마음의 앙금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앙금이 쌓이면 공동체 분열을 초래한다.
그리스도 신앙이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는 교회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박정우(가톨릭대학교 교수, 사회학박사) 신부는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말은 결국 인격이 드러나는 통로"라며
"상대의 잘잘못을 떠나 신자로서 상대의 인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말의 진실성'을 강조한다.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4,29).
"거짓을 벗어 버리고 저마다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4,25).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주님 향한 마음에 막말이 끼어들 틈은 없다. 백영민 기자